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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더아틀란틱 홈페이지 캡처>

[코리아뉴스타임즈]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성폭력 사실을 고발해도 오히려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로 처벌되는 등, 현행 법제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해왔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 피해자 입막음을 위한 가해자의 무기

현행 형법상 공익적 목적이 아닌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적시할 경우 형법 307조, 정보통신망법 70조 등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억울한 사연을 고발하고자 해도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조차 최근 한 방송에서 “명예훼손 피소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가해자가 오히려 이를 역으로 이용해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먼저 고소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에는 동국대학교 A교수가 성추행 피해자인 제자 B씨와 피해자를 도운 같은 학교 C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여성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당시 C교수가 검찰로부터 명예훼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자 A교수는 슬그머니 B씨에 대한 고소 또한 취하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죄보다는 역고소를 통해 입을 막으려 시도하다 검찰 수사결과를 보고 발을 뺀 것.

또한 같은 해 대구여성의전화 공동대표 2인은 성폭력 가해자였던 대구소재 대학 교수 D와 E로부터 사이버명예훼손으로 총 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D교수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상태였다는 것. E교수도 법원에서 성추행 사실이 인정돼 학교로부터 해임당한 상태였다. 가해자의 성폭력 행위가 유죄 판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도운 여성단체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은 사례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도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는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다. 법무법인 폴라리스의 이호영 변호사는 지난해 한 매체에 게재한 칼럼에서 의료사고 피해자가 가해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도하려 하자,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며 말렸던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당장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면 적어도 구성요건이라도 손봐야 한다”며 해당 법률의 폐지를 주장했다.

◇ 헌법재판소, '인격권'에 더 비중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 중 후자에 더 비중을 둔 것으로, 법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돼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정보통신망법 70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문제를 일단락지었다. 헌재는 “사실에 기초해 왜곡된 의혹제기·편파적 의견 또는 부당한 평가를 적시하는 방법으로 실제로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우에도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방의 목적과 공익적 목적의 사실 적시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헌재는 해당 법률이 두 목적의 판단기준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두 목적이 양립하는 경우 법리적 판단은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현재 미투운동에 참여한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해자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성폭력 근절을 원하는 바람’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비방과 비판 중 어떤 것으로 판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또한 사실 적시를 통해 훼손되는 명예가 과연 진짜 명예가 맞느냐는 반론도 존재한다.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성돈 교수는 2016년 발표한 논문 “진실적시명예훼손죄 폐지론”에서 “(사실 적시로 인해) 저하되는 사회적 평가가 과연 헌법이 그 보호가치를 인정하고 형법을 통해 보호할 가치있는 ‘명예’인지 의문스럽다”며 “진실한 사실이 드러나서 손상될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허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유엔에서 두 차례나 폐지 권고

해외에서는 사실 적시를 피해자의 정당한 항변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가 2010년 발표한 논문 “진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제도의 위헌성”에 따르면 미국, 호주 및 유럽 28개국을 조사한 결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16개 국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국가보다 더 많았다.

또한 유엔에서도 지난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을 규정한 현행 법률이 시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피해자들의 오랜 침묵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면서, 청와대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지난 2일 “피해자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답답하다”며 해당 법률의 폐지를 요구했고 현재까지 2만6476명이 청원에 참여한 상황이다.

하지만 법조계에는 인격권 보호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해당 법률의 유지를 원하는 여론도 상당한데다 헌재에서도 이미 2016년 합헌결정을 내린 상황이라 완전 폐지보다는 구성 요건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9월 발의한 개정안도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계류 중인 상황이다. 해당 개정안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를 폐지하고, 검찰의 자의적 수사로 인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점차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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