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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뉴스타임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는 일을 뜻하는 '덕질'로 행복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마니아, 오타쿠(덕후)라고 부른다. <코리아뉴스타임즈>는 독자들을 '마니아 사랑방'으로 초대한다.

마크 저커버그. <사진 출처 = 플리커 : Meta Social>

괴짜 프로그래머에서 거대 IT 기업의 수장이 된 이가 있다. 바로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33)다. 그는 페이스북으로 30대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 부자 10위 안에 들게 됐을 정도로 IT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기업인이다.

저커버그는 어렸을 적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깊었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으며, 11살 때는 의사인 부모님을 위해 병원에 환자가 도착하면 컴퓨터에 알림을 전송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중학생 때는 아버지로부터 컴퓨터 언어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에 뛰어들어 다양한 게임,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다진 고등학생 때는 마이크로스프트가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입사를 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을 거절하고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며 프로그래밍 실력을 쌓았다. 이후 그는 2003년 대학 동기들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페이스매시’를 개발했는데, 이 프로그램이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페이스북의 기반이 됐다.

저커버그의 페이스매시는 하버드대학교 내에서 큰 논란을 야기하며 초기부터 위기를 맞았다. 페이스매시는 2장씩 놓인 여학생들의 사진 중에 어느 쪽에 더 호감이 가는지 고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커버그가 이를 인터넷사이트에 탑재하자 학교 측과 여학생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에 저커버그는 학교로부터 윤리 규정 위반과 사생활 침해 등 명목으로 징계를 받았다.

당시 상황과 관련해 저커버그는 “이런 프로그램이 어떻게 하면 윤리 위반과 법적 분쟁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자신이 공개하고 싶은 정보만 공개한다’, ‘그 정보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두 가지 규칙을 고안해 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매시에 해당 규칙들을 적용하고 이름을 페이스북으로 바꿔 2004년 다시 내놓았다. 페이스매시가 지인들의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SNS로 변신한 것이다.

저커버그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페이스북은 하버드대학교 내에서 SNS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에 다른 대학들에서도 페이스북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저커버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용 대상을 모든 네티즌들로 확대하는 등 페이스북을 개량했다. 이후 페이스북은 나날이 걷잡을 수 없이 성장했고, 현재 전 세계 20억명이 사용하는 SNS로 발전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에 대해 “매일 내가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은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에 나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ioonin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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