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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중국은 자본의 논리만이 아닌, 꽌시(關係)’와 역사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시장이다”

중국 신소프트(sinsoft)의 주오 주오 춴(Zuo Chun) 대표가 중국의 문화 및 정치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실제로 중국 사정에 밝은 이들은 중국시장에서 비즈니스의 전제조건 및 성공 비결로 ‘꽌시’를 꼽는다.

꽌시는 불합리와 뒷돈의 대명사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중국인의 의식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꽌시 문화는 시진핑 주석 부임 이후 중국 정부가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 ‘진입 장벽’을 뚫을 핵심적인 요소다. 투명하고 합리적 경영 방식에 익숙한 외국계 기업들은 왜 기회비용을 써가며 꽌시를 맺어야 하는지 처음엔 이해를 못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꽌시는 말 그대로 사람들과의 관계다. 학연, 지연, 혈연 등 모든 연줄을 통칭한다. 꽌시에 내포된 함의(含意)는 힘이나 실력 없는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동원 가능하고 부탁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뜻하지 그냥 아는 지인 전체를 뜻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언제든 갑을관계자 바뀔 수 있는만큼 어떤 대상도 꽌시에 해당된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중국인들이 꽌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1999년경으로 기억한다. 심천에서 북경으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였다. 옆자리에 장사꾼이 한 사람 탔다. 몇 마디를 나눠보니 북경사람으로 심천에 볼일이 있어 다녀가는 중이라고 했다

필자의 자리는 침대칸이었다. 그 장사꾼은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해 입석으로 차표를 끊었는데 차장에게 부탁해 침대칸으로 옮겼다”며 뿌듯해 했다. 그러면서 차장에 대해 대단히 고마워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룬 듯 의기양양했다. 차장에게 뒷돈을 줬는가 싶어 물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입석과 침대칸의 차액을 지불하고 정당하게 얻은 것이었다.

잠시 후 차장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자 그는 적극적으로 아는 체 했다. 그러 자 차장은 그에게 핸드폰을 써도 되는지 물었다. 당시엔 중국에서 핸드폰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고 요금도 꽤 비싼 편이었다. 핸드폰을 받아 든 차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통화는 계속됐고,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화를 낼 법도 한 상황이었는데 그 장사꾼은 오히려 전화를 써줘서 고맙다는 듯 황감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 핸드폰을 빼앗았거나 난리가 날 상황이었는데 정반대였다.

이윽고 통화를 마친 차장은 장사꾼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둘은 대화를 나눴다. 어디에서 뭘 하며 무슨 용무로 북경을 가는지 등등. 그리고는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꽌시가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의 민초들은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늘 꽌시를 맺는다. 한국사회에서 소위 ‘빽’이 통한다는 여기듯 중국인들도 꽌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단, 꽌시의 형태는 예전과 달리 바뀌고 있다. 등소평 개혁개방 전에는 권력에 줄을 대려는 꽌시 형태가 만연했지만 지금은 권력자뿐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한 가지, 중국에서는 모든 관계가 식사로부터 출발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우선 식사부터 하고 나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식사와 술을 함께 마시며 상대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지만 친화를 다지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중국인들에게 식구의 의미는 각별하다. 중국말로 ‘당신 집에 가족이 몇 명이냐?’를 ‘你家有几口人? 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당신 집에 입이 몇 개냐?’ 라는 뜻이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명절에 오토바이를 타고 수천 km를 달려 식구들과 식사를 할 정도로 이를 중시한다.

한, 중, 일 삼국의 문화를 비교할 때 건축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건축물에서 그 민족의 특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옥구조는 완전 폐쇄형이다. 사각형으로 울타리를 중시하고 바깥과의 경계를 확실히 한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중국은 3리마다 성(城)이요 5리 마다 곽(廓)이다"라고 썼는데 그만큼 성곽을 많이 쌓았다.

중국인들은 왜 폐쇄적인 형태로 건물을 지을까. 궁금해서 중국 문화 관련 책자를 살펴본 적이 있다. 책에서는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다. ▲사방을 둘러싼 집 바깥 벽 높은 담장이 모래바람을 막는 역할을 하고 ▲ 대문 안쪽 벽은 밖에서 들어오는 귀신을 막아준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 가옥의 폐쇄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선 끊임없는 전쟁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가족과 집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을 쌓고 외부와 차단시켰다는 분석이 있는데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중국인들 중에는 호방한 이도 있지만 마음을 잘 열지 않은 이도 많다. 가옥 구조가 폐쇄적인 까닭이 중국인의 이런 경계심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얼마 전 한중 수교 25년을 맞았는데 한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이렇게 된데에는 한국 정부가 꽌시를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사드 배치를 결정한 원인이 크다고 본다. 사이가 좋을 때 차근차근 설명하고 연착륙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애꿎은 기업들만 피해를 입고 있어 안타깝기만 한다.


임성수(중국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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